지난 기회에 국립발레단이 공연한 현대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 적이 있는데 극도로 간소한 무대장치와 무용수의 의상, 추상적인 안무에 이질감을 느꼈었다. 미술, 문학 등이 현대로 오면서 구체적인 묘사를 버리고 추상적으로 변해왔듯이 발레 역시 화려한 고전발레에서 간소하고 난해한 방향으로 흘러온 듯 하다.
이 날 무대에 오른 케네스 맥밀란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마치 고전발레처럼 느껴지는 사실적인 무대배경과 의상, 관객의 여흥을 돋우는 군무(群舞) 등 대부분의 관람자에게 익숙하게 느껴질 만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나 드라마발레라는 장르답게 연극적인 요소를 도입, 고전발레의 형식성으로부터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두 가문 남자들의 칼싸움은 정말 누군가가 찔릴 것같은 사실성이 느껴질 정도. 로미오의 죽음에 절망하여 단도로 목숨을 끊는 줄리엣의 마지막 모습도 실제 현장을 보는 느낌이 든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고전적인 작품에서는 인물들간의 다툼, 사랑 등을 구체적인 연기 대신 상징적인 동작을 통해 표현한다.
주역 무용수의 부상으로 로미오, 줄리엣을 맡은 무용수의 캐스팅이 모두 바뀌었는데 내가 사실 누가 누군지 알겠는가. 로미오를 연기한 남자무용수 이름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지금까지 보아 온 발레리노 중 가장 미소년같은 느낌의 가녀리고 매끈한 체구가 인상적이었다. 나이어린 연인의 풋풋함을 연기하기에 오히려 적합하다는 느낌이었다.
낭만적인 남녀의 만남이 점차 비극적으로 치닫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음악 역시 밝고 가벼운 톤에서 장중하고 어두운 빛깔로 변해간다. 대사가 등장하지 않는 발레에서는 음악이 절반인 것 같다. 그만큼 중요.
4층에서 관람하게 되어 시야가 좋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 앞에 않은 사람들은 뒷사람을 생각하여 몸을 과도하게 숙이거나 좌우로 움직이지 않는 것은 공연 매너라고 생각하는데 언제나 보아도 별로 배려심이 없다. 앞에 앉은 연인이 사이좋게 머리를 맞대는 바람에 1막을 보는 내내 무대가 반이나 가려버렸다.
부상당한 무용수가 회복되면 다시 관람할 기회가 있을까. 그 때는 다른 자리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다.






최근 덧글